(김천=연합뉴스) 홍규빈 기자 = 한국도로공사가 흥국생명에 8-12로 끌려가던 여자배구 챔피언결정 4차전 4세트.
세트 스코어는 2-1로 앞서고 있었기에 김종민 도로공사 감독은 5세트 승부를 고려해 주포 박정아를 벤치로 불러들였다. 15-19에선 외국인 선수 캐서린 벨(등록명 캣벨)도 뺐다.
그런데 두 날개 공격수가 없는 상황에서도 16-20으로 점수 차가 유지되자 김 감독으로선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겼다.
베테랑 미들 블로커 정대영, 배유나와 교체 공격수 전새얀이 포기하지 않고 흥국생명과 대등하게 싸워준 덕분이었다.
결국 김 감독은 박정아와 캣벨을 다시 투입했다. 그리고 25-23으로 뒤집어 4차전을 끝냈다.
경기가 끝나고 만난 김 감독은 "솔직히 포기한 상태였다. 점수 차가 더 벌어지면 박정아를 투입하지 않으려 했다"며 "근데 흐름이 조금 이상했고, 20점대였기 때문에 5세트를 준비할 겸 투입했다"고 복기했다.
4월 4일 오후 경북 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여자 프로배구 챔피언결정전 4차전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와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배구단의 경기. 한국도로공사가 이날 경기를 세트스코어 3:1로 이기고 시리즈 전적은 2:2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린 뒤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박정아도 같은 마음이었다.
"솔직히 잡을 줄 몰랐다"는 박정아는 "5세트 전에 벤치에 앉아만 있기보단 코트에서 조금이라도 뛰는 게 낫다고 (감독님이) 판단하셨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5세트까지 멀리 내다보며 조급해하지 않은 것이 승리 요인이었다. 점수 차를 의식하지 않고 공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했던 것이 극적인 반전으로 이어진 것이다.
교체 투입 후 2점씩 주고받은 18-22에서 박정아와 캣벨은 결정적인 득점을 냈다.
캣벨이 백 어택을 성공한 뒤 박정아가 예리한 대각 공격을 집어넣었다.
대각 공격을 성공한 박정아는 터덜터덜 벤치 쪽으로 걸어가 코칭스태프와 하이 파이브를 했다.
사실은 의도한 세리머니는 아니었다. 박정아는 "넘어질 뻔했는데 벤치여서 하이 파이브를 했던 것"이라며 "(당시에는) 볼이 올라오면 포인트를 낸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돌아봤다.
배유나의 2연속 오픈에 힘입어 동점을 만든 23-23에서는 캣벨의 변칙 공격이 빛을 발했다.
왼손 스파이크로 흥국생명의 허점을 찔러 매치 포인트를 만들더니 그다음엔 오른손으로 같은 코스에 직선 공격을 꽂았다.
경기를 마치고 울음을 터뜨린 캣벨은 "어떤 볼이 올라오고 구질이 어떻든 포인트를 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손가락, 무릎, 등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며 "평소에는 할머니처럼 걸을 정도로 힘든데 코트에 들어가면 에너지를 발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종민 감독은 "선수들이 열심히 해줬기 때문에 이 상황까지 왔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선수들의 투혼을 치켜세웠다.
이제 챔피언결정전 최종전이 오는 6일 흥국생명의 홈인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다.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흥국생명 팬들 앞에서 주눅이 든다고 털어놨던 박정아는 "지금처럼 웃으면서 재미있게 하면 인천 가서도 기죽을 것 없겠죠"라고 자신감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