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포르투갈을 꺾고 12년 만에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16강에 진출한 한국 축구대표팀의 조력자는 같은 조의 가나였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3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포르투갈과 조별리그 H조 최종전에서 2-1로 승리한 뒤 초조한 마음으로 같은 시간 알자눕 스타디움에서 진행 중이던 가나와 우루과이전을 지켜봤다.
후반 추가시간까지 0-2로 끌려가 사실상 16강 진출 가능성이 사라졌던 가나는 조별리그 통과에 딱 1골이 더 필요했던 우루과이를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가나 골키퍼 로런스 아티지기는 마치 앞서고 있는 팀처럼 골킥 상황에서 시간을 끌었고, 오토 아도 가나 감독은 종료 1분을 남겨두고 선수를 교체했다.
한마음으로 우루과이의 16강 진출을 막겠다는 가나 선수단의 의지를 엿볼 수 있던 장면이다.
결과적으로 가나가 우루과이에 0-2로 패배한 덕분에, 한국은 16강 진출을 위한 마지막 '경우의 수'를 완성할 수 있었다.
가나가 우루과이를 마지막까지 괴롭힌 배경에는 교체로 경기에서 빠져 경기 막판 우루과이 벤치에서 울고 있던 루이스 수아레스가 있다.
수아레스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8강 가나전에서 1-1로 맞선 연장전에서 도미니카 아디이아의 헤더를 마치 골키퍼처럼 쳐냈다.
수아레스가 퇴장당한 가운데 가나의 아사모아 기안이 페널티킥을 실축했고, 결국 우루과이는 승부차기 끝에 4강에 올랐다.
12년 전 이 장면 때문에 가나는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루과이와 같은 조에 편성된 뒤 복수를 다짐했다.
나나 아쿠포아도 가나 대통령까지 나서서 "우리는 우루과이에 대한 복수를 12년 동안 기다려왔다. 이번에는 수아레스의 '손'이 가나를 방해하지 못할 거로 확신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국가대표 출신인 가나 미드필더 이브라힘 아유는 디애슬레틱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수아레스 사건 직전까지) 가나가 아프리카 최초로 4강에 진출할 것으로 확신했었다"면서 "그래서 가나 전체, 아프리카 전체가 수아레스를 미워한다"고 말했다.
수아레스는 이번 카타르 월드컵 가나전을 앞두고 "사과하지 않겠다. 그때 퇴장당하지 않았느냐"는 말로 가나 선수들의 복수심에 불을 지폈다.
결과적으로 가나는 우루과이에 패해 16강 진출이 좌절됐지만, 우루과이의 발목을 잡은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경기 후 가나 수비수 대니얼 아마티는 "경기 중 우루과이가 1골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동료들에게 '우리가 16강에 갈 수 없다면, 우루과이도 못 가게 막자'고 이야기했다"고 털어놨다.
다만 아마티는 주장 앙드레 아유를 제외하면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뛴 선수가 없다는 이유로 12년 전 '나쁜 손' 사건을 복수한 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마티의 매너 있는 말과는 달리, 가나 팬들은 우루과이의 불행에 진심으로 기뻐했다.
알자눕 스타디움을 찾은 가나 팬은 자국팀이 경기에서 졌는데도 바로 뒷자리의 우루과이 팬을 바라보며 "코리아, 코리아"라고 외치며 노래를 불렀다.
한 가나 팬은 영국 스포츠매체 토크 스포츠와 영상 인터뷰에서 한껏 웃으며 "수아레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제발 이제 은퇴하자. 가나도 16강에 못 갔지만, 우루과이를 떨어뜨려서 무척 기쁘다"면서 "(우루과이를 제친) 한국과 포르투갈을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이번 대회가 수아레스에게는 마지막 월드컵이 될 것이 분명하다. 가나 국민들은 수아레스의 마지막이 불행으로 끝난 것을 기뻐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