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무적함대' 스페인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모로코의 짠물 수비는 견고했다.
정교한 태클을 성공하는 수비수를 모두 제치더라도 수문장 '야신'이 최후방에서 버티고 있다.
이런 튼튼한 수비를 내세워 모로코는 처음으로 본선에 나선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52년 만에 8강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모로코는 7일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스페인과 월드컵 16강전에서 전·후반 90분과 연장전까지 120분을 0-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3-0으로 이겼다.
스페인은 63%의 점유율을 가져가며 경기를 주도했다.
경합 상황을 뺀 모로코의 점유율은 20%로 스페인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그러나 이같이 공을 소유하며 공세를 폈는데도 스페인은 위협적 장면을 거의 만들지 못했다.
축구 기록 전문 업체 옵타에 따르면 이날 스페인은 1966년 잉글랜드 대회 이후 본선에서 가장 적은 전반 슈팅 수(1회)를 기록할 정도로 고전했다.
유효슈팅은 전반에 하나도 없었고, 120분간 혈전을 치른 경기 전체로 넓혀 봐도 2개에 그쳤다. 이마저도 모두 세트피스 상황에서 나왔다.
조별리그 E조 1차전에서 코스타리카를 무려 7-0으로 대파하며 화력을 자랑한 스페인이 철저하게 틀어막힌 것이다.
모로코 수비수들은 집중력을 발휘하며 파울 없이도 과감한 태클로 스페인 공격수들의 전진 드리블을 막았고, 각종 볼 경합에서 승리하며 파이널 서드(경기장을 세 구역으로 나눴을 때 가장 위 공격 구역)에서 스페인의 패스워크를 억제했다.
속이 탄 루이스 엔리케 감독은 후반 18분 조별리그 세 경기 연속골을 기록한 공격수 알바로 모라타, 후반 30분에는 니코 윌리엄스를 투입하며 전방에 힘을 줬지만 모로코 수비진의 집중력이 더 뛰어났다.
이 경기뿐 아니라 모로코는 월드컵 내내 압도적인 수비력을 선보였다.
4경기에서 실점은 한 번뿐이다.
이마저도 자책골로 상대 선수에게는 아직 골문을 허용하지 않았다.
스페인처럼 조별리그 상대 3팀도 꽁꽁 묶였다.
일본을 꺾고 8강을 확정한 크로아티아는 모로코를 상대로 유효슈팅을 딱 2번 찼다. 벨기에가 네 번의 유효슈팅을 만들었고, 캐나다는 하나도 기록하지 못했다.
네 경기에서 모로코가 허용한 평균 유효슈팅은 2회뿐이다.
경기 중 찾아오는 2번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모로코를 꺾기 힘들게 되는 셈이다.
유효슈팅 기회를 잡았다고 다가 아니다. 수문장 야신 부누를 뚫어야 하기 때문이다.
옛 소련의 전설적인 골키퍼 레프 야신과 외래어표기법상 똑같이 '야신'으로 표기되는 모로코의 골키퍼 야신 부누는 이날 120분 내내 방심하지 않았다.
후반 추가 시간 나온 다니 올모의 위협적 프리킥을 몸을 날려 쳐내며 시동을 건 부누는 승부차기에서 본격적으로 '이름값'을 했다.
1번 키커로 나선 사라비아가 또 한 번 골대를 맞추며 실축한 스페인은 2번 키커 카를로스 솔레르의 슈팅마저 부누의 선방에 막혀 위기에 몰렸다.
3번 키커로 주장 세르히오 부스케츠가 나섰고, 부누가 또 한 번 몸을 날려 슈팅을 쳐내며 모로코의 8강을 이끌었다.
이번 대회 전까지 모로코가 가장 높게 올라온 무대는 1986년 멕시코 대회의 16강이었다. 당시 16강전에서는 로타어 마테우스에게 결승 골을 헌납해 서독에 0-1로 졌다.
모로코는 사상 처음으로 중동에서 열린 이번 월드컵에서 유일하게 조별리그를 통과한 아랍 국가이기도 하다.
아울러 1990년 카메룬, 2002년 세네갈, 2010년 가나에 이어 8강까지 올라간 네 번째 아프리카 팀이 됐다.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둔 이웃이자 식민 통치의 아픔을 줬던 스페인과 맞대결에서 처음으로 승리를 챙기는 겹경사도 누렸다.
이 경기 전까지 모로코는 스페인과 역대 1무 2패를 기록했다. 마지막 맞대결인 2018 러시아 대회 조별리그 경기에서도 2-2로 이기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