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노스아이레스=연합뉴스) 김선정 통신원 = 아르헨티나 매체가 브라질이 배출한 '축구 황제' 펠레 별세 소식을 전하며 리오넬 메시 이전 자국 최고의 축구선수로 꼽히는 디에고 마라도나와의 애증 관계를 집중 조명했다.
아르헨티나 유력 매체 클라린은 "축구의 신 마라도나와 펠레가 축구계의 양대 산맥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며, 다만 두 사람은 기회 있을 때마다 서로 으르렁거렸다고 회상했다.
이들의 첫 만남은 '대선배' 펠레가 '샛별' 마라도나를 격려한 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9년 4월 9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펠레 자택에서 아르헨티나 스포츠 전문지 '엘그라피코'(El Grafico) 기획 인터뷰의 일환으로 두 사람은 처음 대면했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한 마라도나는 당시 아르헨티나가 우승하자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한 것에 상심해 있었다고 한다.
이런 마라도나에게 펠레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고, 브라질 대표팀 유니폼에 사인까지 해주면서 덕담을 건넸다.
마라도나는 이후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우승 주역으로 떠오르며 1978년의 악몽을 떨쳐냄과 동시에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이후 두 사람 관계는 마라도나 도핑 사건으로 크게 틀어지기 시작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 금지 약물 양성 반응을 보인 마라도나에 대해 펠레는 "(도핑은) 새로운 세대의 축구선수들에게 나쁜 사례"라고 비난했다.
이에 마라도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권력에 고개를 숙인 기성 세대'라는 용어를 동원해 대선배 펠레를 직격했다.
2000년 들어서도 펠레는 "브라질엔 마라도나보다 더 좋은 선수들이 넘쳐난다"며 마라도나를 깎아내렸다고 클라린은 보도했다.
펠레와 마라도나 간 신경전은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개최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당시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월드컵 개최 준비를 하고 있었고, 브라질 출신 주앙 아발랑제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과 펠레는 일본을 적극적으로 밀었다.
반면, 마라도나는 한국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는데, 이는 축구계에서 두 축구 스타의 애증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여전히 회자된다.
다만, 두 사람 모두 나이가 들며 서로 존중하고 위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등 화해한 듯한 분위기를 보여줬다. 펠레와 마라도나는 2016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광고 캠페인에서 만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그간의 앙금을 풀었다고 클라린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