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탓에 생긴 공백도 프로농구 명물이자 최고 스타의 서사가 얽힌 '농구영신' 매치의 열기는 식히지 못했다.
31일 오후 10시부터 원주 DB와 전주 KCC 간 2022-2023 SKT 에이닷 프로농구 정규리그 경기가 열린 강원도 원주종합체육관에는 4천100석이 모두 동났다.
영하 3도까지 내려간 쌀쌀한 날씨에도 경기장 앞에는 모인 인파가 북적이며 생긴 열기로 뜨거웠다.
매표소뿐 아니라 푸드트럭에도 관중들의 발길이 이어져 대기 줄의 꼬리가 실시간으로 길어졌다.
입장이 시작된 오후 8시 30분부터 팬들은 마스크 위로 드러난 눈웃음을 감추지 못한 채 따뜻한 실내로 발길을 재촉했다.
농구영신은 '농구'와 '송구영신(送舊迎新)'을 합한 말로, 농구장에서 경기를 보며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행사다.
2016년부터 이 송년 매치는 매년 관중몰이에 성공하며 KBL의 '히트 상품'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지난 2년간은 코로나19 유행 여파로 열리지 못했다.
이날 경기는 3년 만의 행사 재개이자 프로농구 최고 스타 허웅(29·KCC)의 첫 '친정 방문'이기도 하다.
최근 2년 연속 프로농구 올스타 투표 1위에 오른 허웅은 지난 시즌까지는 이 경기장이 안방이었다.
201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동부(현 DB) 유니폼을 입고 지난 시즌까지 간판스타로 활약하며 '원주 아이돌'로 불린 허웅은 올여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으로 KCC로 이적했다.
이번 시즌 DB와 대결이 전주에서만 열렸던 터라 처음으로 원주를 '원정팀 선수'로 방문하게 됐다.
입장를 기다리는 줄 맨 앞에 있던 정모(42) 씨는 허웅을 보러 강원도 춘천에서 오후 4시에 출발했다고 한다.
정 씨는 "오늘 경기는 참 의미가 크다. 난 DB의 팬이면서 허웅의 팬이라 올해의 마지막을 DB·허웅과 함께 보낼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 한쪽 편을 들기가 난감하다"면서도 "응원해온 정이 있어 DB가 이겼으면 하지만, 허웅도 맹활약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 그림"이라고 웃었다.
실제로 경기 중 허웅이 공을 잡거나 득점에 성공할 때마다 장내가 팬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그보다 DB의 득점에 환호하는 홈팬들의 함성이 더 컸다.
심판이 DB에 불리한 판정을 할 때도 야유 소리가 중첩돼 경기장 구석구석까지 울려 퍼졌다.
속공 득점을 22-6으로 압도한 DB가 102-90으로 시원한 승리를 거둔 후에도 팬들은 경기장을 떠나지 않고 자정이 되기를 기다렸다.
오후 11시 59분이 되자 경기장 조명이 모두 꺼졌다. 60부터 숫자가 줄어드는 전광판을 말없이 응시하던 팬들은 7초부터 함께 외치며 새해를 맞았다.
김희옥 KBL 총재와 각 구단 관계자들이 코트에 마련된 종을 세 번 울렸고, 형형색색으로 빛을 내는 드론들이 어두워진 장내를 잔잔히 밝히며 2023년이 왔음을 알렸다.
농구장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이 행사는 프로농구 최고 흥행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2016년 경기도 고양에서 열린 서울 SK와 고양 오리온(현 고양 캐롯)의 첫 송년 매치에 6천83명의 관중이 들었고, 다시 두 팀이 맞붙은 2017년 잠실학생체육관 경기에는 5천865명이 입장했다.
창원에서 LG와 부산 kt(현 수원 kt)가 맞대결했던 2018년 경기에는 7천511명이, 부산사직체육관에서 두 팀이 맞붙은 2019년에는 6천석이 매진되고도 입장을 원하는 팬들의 발걸음이 이어져 관중석 일부를 덮었던 통천을 걷어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