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한국 야구대표팀 터줏대감 왼손 투수 김광현(SSG 랜더스)은 2019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이후 4년 만에 찾은 일본 야구의 성지 도쿄돔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김광현은 8일 도쿄돔에서 진행한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 대표팀 공식 훈련을 마치고 취재진과 만나 "도쿄돔이 개장한 해가 내가 태어난 1988년이다. 벌써 35년이나 됐으니 연식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 혜성처럼 등장해 대표팀 마운드를 지탱해왔던 김광현은 후배들에게 선발 자리를 양보하고 불펜에서 대기한다.
투구 수 제한이 있는 WBC 규정 때문이지만, 공식처럼 여겨진 '대표팀 왼손 선발 김광현'은 적어도 이번 대회에는 깨졌다.
정작 김광현은 "한국시리즈라고 생각하면 어색하지 않다. 그 정도로 중요한 경기라 혼신의 힘을 다해서 던져야 한다"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대표팀은 9일 호주전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호주전에서 승리하면 사실상 1라운드 통과의 8부 능선을 넘을 수 있고, 10일 일본전에 한결 편하게 나서는 게 가능하다.
김광현은 "호주전을 이기면 좋은 분위기로 일본이랑 경기할 수 있어서 오히려 (일정이) 잘됐다. 호주만 이기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대표팀은 호주 주요 선수의 영상을 수도 없이 돌려봤다.
김광현은 "기억나는 타자는 없어도, 모든 타자가 직구에는 좋은 스윙을 하더라"면서 "변화구로 어떻게 대결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맥을 짚었다.
이강철 한국 야구대표팀 감독은 일찌감치 김광현과 양현종(KIA 타이거즈)을 불펜으로 쓰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광현은 "(일본전) 선발 투수 빼고는 전부 다 대기하라고 해서 (불펜에서) 출격 준비를 하고 있다"며 사실상 일본전 선발 후보에서 빠졌다는 사실을 알렸다.
일본전 유력한 선발로 거론되는 왼손 투수 구창모(NC 다이노스)는 김광현 후계자로 지목된 상황이다.
그러나 구창모는 7일 오사카 교세라돔에서 벌인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2이닝을 완벽하게 막은 박세웅(롯데 자이언츠)의 다음 투수로 등판해 볼넷 2개를 내주며 ⅔이닝 2실점으로 부진했다.
김광현은 2009년 WBC 일본전에서 한 차례 대량 실점했던 경기를 떠올리며 "저는 그거보다 더했다. 콜드게임도 당하고 그랬다"고 구창모를 위로한 뒤 "1~2 경기에 실망할 선수도 아니다. 그랬다면 이렇게 태극마크를 달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구)창모가 언제 나갈지 몰라도 한 타자, 공 하나만 잘 던져도 투수는 언제든 자신감을 찾을 수 있다. 분명히 이겨낼 거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구창모는 지난 시즌 부상을 극복하고 19경기에서 11승 5패 평균자책점 2.10으로 활약했다.
건강하게 마운드에 꾸준히 올라올 수만 있다면 한국 최고의 왼손 투수라는 의미에서 나온 말인 '건강한 구창모'는 에이스라는 뜻으로 통한다.
김광현은 "지켜보는 분들도 걱정 안 해도 될 것"이라며 "건강한 구창모잖아요. (지금) 건강하잖아요"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