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연합뉴스) 최송아 기자 = "프로팀에 처음 입단했을 때 골키퍼 4명이 1, 21, 31, 41번을 달았어요. 그중 가장 뒤인 41번을 받고 '이걸 주전 번호로 만들겠다'며 이를 악물었죠. 1년 반 만에 그렇게 만들었고, 그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네요."
K리그 현역 선수 중 최다 출전 기록(588경기) 보유자인 골키퍼 김영광(성남)은 올해로 프로 22번째 시즌을 맞이한다.
첫 시즌에 받은 등번호 41번을 여전히 달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그는 그 번호와 같은 한국 나이 마흔하나에 변함없는 '승리욕'으로 또 한 번의 봄을 준비하고 있다.
K리그2 성남FC 선수단이 2차 전지 훈련 중인 경남 남해에서 2일 만난 김영광은 "저보다 스물한 살 어린, 아들 같은 후배(2004년생 박현빈)와 함께 방을 쓰고 있다"며 웃었다.
한참 전부터 '베테랑'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그에겐 시즌을 위한 경기력을 준비하는 것 외에 20년 넘게 프로에서 버텨 온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하는 것이 동계 훈련의 중요한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김영광은 "프로에서 3∼4년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는 선수, 드래프트 1순위로 들어와도 버티지 못하는 선수를 많이 봤다"며 "프로는 냉정하고 살아남기 어렵다고, 어떻게 해야 살아남는지 등을 알려주려고 한다"고 전했다.
살아남기 위해 갖춰야 할 단 한 가지를 묻자 '승리욕'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김영광은 "팀 내 다른 선수와의 경쟁, 다른 팀과의 경쟁, 모두와의 경쟁이라 승리욕이 없으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며 "후배들에게 지기 싫어서 저도 열심히 한다. 나이 차이가 아무리 크더라도 지기 싫다"고 강조했다.
이어 "'저 선수를 이겨야지'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게 하고자 시간과 노력, 모든 걸 투자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는 지난해 K리그1 최하위에 머물며 이번 시즌을 2부리그에서 보내게 된 성남에 가장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김영광은 "그 어느 해보다 가장 힘든 동계 훈련을 치르고 있다. 축구에만 집중하며 몸과 정신이 모두 크게 강해질 수밖에 없는 훈련"이라며 "다들 철인이 되어가는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햄스트링 부상으로 1차 훈련엔 참가하지 못했는데, 합류해보니 분위기가 살벌하다고 느낄 정도로 선수들 눈빛이 살아있다. 젊은 선수들은 '파닥파닥'한다고 해야 하나, 에너지를 발산하고 활기가 넘친다"며 "어느 팀보다도 파이팅 넘치는 팀이 될 듯하다"고 기대했다.
김병지 강원FC 대표(706경기)에 이어 역대 2위이자 현역 최다인 통산 588경기에 출전한 김영광은 이제 리그에서 12경기를 더 뛰면 600경기를 돌파한다.
김영광은 이에 대해 "선수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제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서 기록엔 연연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매 경기 마지막이라는 생각만 한다"고 했다.
"골을 막아야 하지만 먹기도 하는 직업인데, 지금도 골 먹는 게 제일 싫다"는 그는 "상대가 잘 차서 골을 내주는 것과 제가 부족해서 주는 건 다르다. 제가 부족해서 나오는 실점을 최대한 안 주려고 노력하는 게 장갑을 벗을 때까지 목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성남의 부활과 선수 생활의 멋진 마무리가 그의 남은 바람이다.
김영광은 "팀이 2부로 강등되면서 그게 제 탓인 것만 같아서 마음이 아프고 팬들에게는 늘 죄송했다"며 "다시 승격이라는 큰 선물을 드리고 자부심을 느끼시게끔 하고 싶다. 팀을 1부로 올려놓고 마지막엔 훌훌 털고 웃으며 떠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