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동남아시아의 월드컵'에서 펼쳐진 한국인 축구 지도자들 사이 치열한 신경전의 승자는 박항서(64) 감독이었다.
박항서 감독은 9일 베트남 하노이의 미딘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동남아시아축구연맹(AFF) 미쓰비시컵 준결승 2차전에서 자신이 이끈 베트남이 인도네시아를 2-0으로 꺾자 함박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주심이 경기 종료 휘슬을 울리자 박 감독은 선수들을 부둥켜 안고서 팔을 허공에 뻗으며 기쁨을 격하게 드러냈다.
박 감독은 4강에서 격돌한 신태용(53) 인도네시아 대표팀 감독과 양보 없는 '장외 신경전'을 펼쳤다.
지난 6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1차전을 득점 없이 비긴 후 박 감독은 "인도네시아도 좋은 팀이지만 우리가 더 강하다"며 자신감을 드러냈었다.
그러자 신 감독은 이어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베트남이 더 강한데 왜 0-0으로 비겼느냐"고 반박했다.
두 감독은 5일 진행된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악수를 하지 않아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6일 이에 대한 질의를 받은 신 감독은 "나는 악수를 하려고 했는데 박 감독님이 돌아서는 바람에 나도 멈췄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신 감독은 8일에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거칠게 상대를 쓰러뜨리는 베트남 선수들의 경기 영상을 게시하며 또 한 번 신경전에 불을 지폈다.
신 감독은 이 영상과 함께 "주심과 선수는 페어 플레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썼다.
사령탑들의 마음을 읽었는지 9일 준결승 2차전에 나선 양 팀 선수들은 그라운드 위에서 격렬한 몸싸움을 펼쳤다.
전반 34분 K리그2 안산 그리너스에서 뛰는 아스나위 망쿨람이 거친 태클로 왼쪽 측면에서 도안 반하우를 쓰러뜨렸다.
그러자 이를 눈앞에서 본 박 감독이 흥분을 참지 못하고 터치라인까지 뛰어가 심판에게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4분 후 반하우는 반격한다는 듯이 경합 중 팔을 휘두르며 망쿨람의 얼굴을 가격했다. 이에 양팀 선수들이 몰리며 거친 몸싸움과 신경전이 이어졌다.
후반 29분 코너킥 상황에서 자리싸움 중 또 한 번 선수들끼리 말싸움이 붙자 황급히 달려간 주심이 연신 휘슬을 불며 경기를 정돈하려 애를 써야 했다.
이 같은 격전 끝에 1, 2차전 합계 0-2로 뒤진 인도네시아는 결국 준결승에서 고배를 마셨다.
직전 2020 스즈키컵(현 미쓰비시컵)에서 준우승을 거둔 인도네시아와 신 감독은 두 번째 도전에서도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인도네시아 축구대표팀에 합류한 이후 박 감독과 상대전적에서도 2무 2패로 열세를 면치 못했다.
23세 이하(U-23) 대표팀 간 맞대결 전적까지 넣으면 2무 3패다.
반면 이 대회를 끝으로 베트남과 약 5년간의 동행을 마무리하는 박 감독은 '마지막 도전'에 나설 기회를 잡았다.
그의 최종 상대는 말레이시아와 태국 중 한 곳이다.
두 팀의 준결승에서는 1차전 1-0 승리를 거둔 김판곤 감독의 말레이시아가 유리한 고지를 점한 상황이다.